모니터방송용 모니터 스펙 이해하기 (5)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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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감마 계측기가 없는데요…”

10여 년 전 소비자용 모니터를 만들던 모 중소기업 개발자가 한 얘기입니다. 그 회사에서 새로 나온 모니터의 샘플을 테스트한 결과 감마 (gamma)에 문제가 있다고 해당 회사에 알렸더니 기술적인 문제는 개발자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계측된 결과를 보여 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자 그 개발자는 ‘감마 계측기가 없어서 감마의 문제를 미리 파악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였던 것입니다.


필자는 “이 회사에서도 생산할 때 CA-210 같은 계측기 사용하지 않으시나요? 네, 사용하시죠? 감마는 그걸로 계측하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았고, 이후 좀 더 긴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CA-210과 같은 계측기를 사용하는 것은 맞는데, 이 계측기 하드웨어만으로는 감마를 알 수는 없고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런 소프트웨어가 드물었고 그나마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휘도나 컬러 값이 아닌 감마와 같은 복합적인 계측과 분석이 필요한 경우 미놀타에서 제공하는 SDK (Software Development Kit)를 이용해서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필자 역시 이 SDK를 활용해서 디스플레이 리뷰와 벤치마킹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 Konica Minolta의 Color Analyzer CA-210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우선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에 계측에 필요한 컬러 패치 (Color Patch)를 표시해 주어야 하고, 측정용 컬러가 화면에 표시되면 이 컬러를 계측하도록 (시리얼 통신으로 연결된) 측색기에 명령을 내리고, 측색기가 계측한 값을 주면 이를 받아서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 값들을 불러와 국제표준의 방법으로 계산을 해 주어야 합니다. (컴퓨터와 인터페이스가 달라) 컴퓨터에 직접 연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별도의 비디오 신호기 (Video Signal Generator)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역시 (당시에는) 시리얼 통신으로 제어를 해야 하며, 계측에 필요한 컬러 패치를 만들기 위해서 원하는 비디오 신호기를 만들고 있던 제조사와 협력을 해야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위에서 언급했던 모 중소기업의 개발자가 감마를 계측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감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던 개발자 자체가 심지어 대기업에도 많지 않았습니다.



※ 디스플레이 컬러 자동계측 및 분석 시스템 (ColorTaster) 구성도


디스플레이 대기업이나 관련 장비 제조사에서는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필자가 만든 것 같이 리뷰나 벤치마킹 하기 좋게 저렴하게 나와 있는 소프트웨어가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리뷰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성과 엘지 계열사와 모니터/TV 제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 대학교, 연구소 등에 판매하였는데 지금은 모 하드웨어 벤치마크 사이트 2곳에서 열심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 디스플레이 컬러 자동계측 및 분석 시스템 (ColorTaster) 사용 장면


수학 계산보다는 그림이 더 쉽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디스플레이의 주요 컬러 특성에 대해 분석을 좀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리뷰 및 벤치마킹 용으로 만든 것이라 전문적인 디스플레이 리뷰어 혹은 제조사의 개발이나 품질 관리 부서 담당자가 사용하기 좋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열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오는데 모든 측정된 결과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이 되었고, 데이터를 분류하고 활용하기 좋습니다. 디렉토리 (폴더)를 무제한 생성할 수 있고, 한 디렉토리에도 무제한으로 파일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파일은 또 여러 개의 계측 모음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한 모니터의 여러 모드를 비교해 보든지, 여러 제품의 컬러 특성을 한 눈으로 비교할 때 편리합니다. 어떤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면서 뭔가 개선될 때마다 개선 전과 비교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 ColorTaster 소프트웨어의 메인 데이터베이스


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떤 특정 파일을 연 후, 그 중에서 하나의 계측 모음 (컬러 패치)를 열면 아래와 같이 여러 개의 계측 데이터가 나옵니다. 가로 줄 하나가 한 번의 계측결과입니다. 계측한 시간과 계측한 패치의 형태, (RGB 컬러) 입력값, 계측값 (CIE X,Y,Z 및 이를 기반으로 계산한 CIE xy, uv, u’v’, CCT (상관색온도) 등이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값들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분석과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ColorTaster 소프트웨어의 하위 데이터베이스


예를 들어, 아래의 그래프는 최신의 32인치 UHD 모니터의 몇 가지 화면 모드를 측정한 것입니다. 모드에 따라 약 50nit에서 100nit, 250nit까지 다양합니다. 이 그래프는 각각의 모드에서 Black부터 White까지를 16단계 정도로 나누어서 계측한 후 그 점들을 실선으로 이은 것입니다.


※ ColorTaster 소프트웨어로 Black ~ White의 휘도를 측정한 결과 그래프


아래의 그래프는 위와 동일한 데이터를 활용했지만 계산을 조금 다르게 한 것입니다. Black ~ White의 휘도를 0 ~ 1의 범위로 정규화시키고, 입력값 (RGB 컬러값)도 0 ~ 1의 범위로 정규화시킨 겁니다. 이렇게 하면 최대 휘도와 관계없이 Black ~ Gray ~ White의 상대적인 밝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디스플레이 감마 혹은 EOTF (Eletro-Optical Transfer Function)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CRT (Cathode Ray Tube, 브라운관) 고유의 비선형적 특성이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영상관련 각종 국제표준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LCD나 OLED 등의 디스플레이들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도록 개발됩니다.


※ 측정한 Black ~ White의 입력값과 출력값 (휘도)를 정규화해 감마를 분석한 그래프


사실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숫자나 좌표보다는 그림이나 그래프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색을 계측해 보니 CIE x,y 색좌표가 (0.33, 0.33)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금방 감이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HDTV나 UHDTV의 표준 white point가 (0.3127, 0.3290)이라는 것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0.33, 0.33)이 이 표준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를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그래프와 같이 BBL (Black Body Locus, 흑체궤적)과 DLL (Day Light Locus)와 함께 표시해 주면 색 차이나 정확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측정한 모드별 White Point를 BBL (Black Body Locus) 및 DLL (Day Light Locus)와 비교


아래의 그래프는 백색 (White Point)의 색 좌표와 함께 어두운 회색에 이르기까지 모두 색 좌표를찍은 것입니다. Black ~ Gray ~ White는 색의 밝기만 다를 뿐 모두 무채색 (Neutral Color)이기 때문에 색 온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두 한 점에 찍혀야 합니다. SDTV, HDTV, UHDTV 등 모든 방송의 White Point 표준은 D65 (Daylight 6500K)이므로 DDL 상의 6500K에 모두 모이면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실제 제품이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Dark Gray ~ White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점에 최대한 가깝게 모일수록 회색 계조의 색 선형성 (Grayscale Color Linearity)이 우수하다고 평가합니다.


※ White ~ Dark Gray를 모두 표시한 경우 색 재현력이 우수!


CIE xy (1931),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아래의 그래프는 최신 32인치 모니터의 여러 모드를 측정한 것입니다. 1931년에 국제조명학회 (CIE)에서 표준화한 최초의 국제표준 색 공간 (Color Space)입니다.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색 공간이 아직도 열심히 활용되고 있는 이유는 역시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1) 최초의 표준화된 색 공간이라 익숙하다는 점, (2) 2차원이라 단순하고 이해가 쉽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1960년대의 CIE uv와 1970년대의 CIE u’v’ (UCS) 및 CIE LAB 색 공간이 나름의 의미 있는 개선을 이루어 내기는 했지만 CEI xy (1931)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하거나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후에 있었던 CIECAM 2000이나 CIECAM 02 등은 그 복잡성의 제곱에 비례해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 측정된 모니터의 색재현범위 (Color Gamut) vs HDTV (BT.709) in CIE xy (1931)


아래의 CIE u’v’ (1976) 색 공간은 CIE xy와 CIE uv 색 공간이 가지는 색 차이의 불균형을 상당 부분 개선한 것이지만 여전히 2차원이라 ‘색의 밝기 (Lightness)’에 대한 정보가 없어 제한적이라는 점과 아직도 색 차이에 대한 수치와 (인간이 인지하는) 느낌과는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 측정된 모니터의 색재현범위 (Color Gamut) vs HDTV (BT.709) in CIE u’v’ (1976)


인간이 느끼는 색의 3가지 특성인 명도 (Lightness), 색상 (Hue), 채도 (Saturation)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3차원 색 공간으로는 CIE LUV (혹은 L*u*v*, 전자공학에서의 LUV가 아님 주의)도 있지만 색 공간 구성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왜곡이 큰 편입니다. 본격적인 3차원 색 공간은 CIE LAB (혹은 CIE L*a*b*)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계속 발전시켜 현재는 CIECAM02 (CIE Color Appearance Model 2002)까지 등장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거나 쓰이지는 않지만 현재는 각종 색 차이를 계산할 때 deltaE (CIECAM 02)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VCRC (Volume Color Reproduction Capability)나 PCL (Perceptual Contrast Length)과 같은 분석 기법도 등장했습니다. VCRC는 기존의 색 재현범위 (Color Gamut) 계산을 3차원에서의 컬러 부피로 하는 것이고, PCL은 기존의 (많이) 과장될 수 있는 명암비를 실제 인간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확하게 명암대비 차이를 계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단,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상업의 영역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아직 과학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측정된 모니터의 색재현범위 (Color Gamut) vs HDTV (BT.709) in CIECAM02


명암비 스펙은 얼마나 진실일까? 

우리가 흔히 모니터나 TV 등의 디스플레이 제품의 스펙에 표기하고 있는 ‘명암비’라는 항목은 그 단순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즉, 백색의 휘도를 흑색의 휘도로 나누어 구하는 이 명암비 (Contrast Ratio)는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오랫동안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니터를 측정했을 때 백색의 휘도가 100nit, 흑색의 휘도가 0.1nit였다고 한다면 ‘명암비 = 100nit ÷ 0.1nit = 1000’으로 계산됩니다. 일반적으로는 명암비 스펙에서는 이를 ‘1000:1’이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이 명암비가 과연 우리의 눈으로 느끼고 뇌에서 해석되는 것과 유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색 휘도가 2배 높아지고, 흑색 휘도가 2배 낮아지면 명암비는 4배 증가하는 매우 선형적인 결과를 낳게 되지만 인간의 눈이 실제 느끼는 것은 이렇게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4배가 아니라 40% 정도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VCRC (Volume Color Reproduction Capability) 및 PCL (Perceptual Contrast Length)


※ 측정된 모니터의 SDR 모드 명암비: 약 6,200 대 1

※ 측정된 모니터의 HDR 모드 명암비: 약 500,000 대 1 (SDR 모드의 약 80배)


하지만 최신 분석기법 중 하나인 PCL (Perceptual Contrast Length)로 계산할 경우 각각의 PCL은 약 174와 약 322로 계산됩니다. 일반적인 명암비 계산으로는 80배 차이가 나던 것이 PCL로는 약 2배도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눈이 휘도의 선형적 증감에 그대로 비례하지 않고 지수함수적으로 비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PCL은 매우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디스플레이 제품의 스펙 올라가기는 어렵습니다만, 제품 스펙에 있는 명암비 수치가 실제 숫자의 차이만큼 우리 눈에 차이를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측정 결과를 놓고 보면 이 모니터의 HDR 모드 (PQ)는 SDR 모드 (HDTV)에 비해 10배 더 높은 휘도와 약 60% 더 넓어진 색재현 범위, 그리고 더 낮은 블랙 레벨 덕분에 전체적으로는 약 4배 더 풍부한 색감을 보여줄 것으로 예측됩니다. (VCRC)

※ 측정된 모니터의 Color Volume, VCRC 및 PCL 



※ 참고: 2022년 DVNEST 뉴스레터에 기고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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