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방송용 모니터 스펙 이해하기 (4)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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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색역, 그거 다 마케팅 아닌가요?”

10여 년 전 디스플레이 패널을 제조하는 한 대기업을 방문해 디스플레이를 계측하고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잠시 담배 한 대 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색역이 넓다는 게 실제 좋은 건가요? 다 마케팅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답변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어서 가 아니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엔지니어의 생각 (혹은 이해)에 반하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디스플레이 패널 입장에서 봤을 때 색역 (Color Gamut)은 무조건 넓을 수록 좋다. HDTV (혹은 sRGB)의 경우 인간의 눈으로 식별 가능한 컬러의 40% 정도 밖에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미지 출처: 삼성디스플레이 


문제는 표준이다. 현재의 TV 방송 표준이나 모니터 관련 표준들이 모두 우리가 흔히 브라운관이라고 부르는 CRT (Cathode Ray Tube, 음극선관)의 컬러 특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혼자서 HDTV 표준 색역보다 넓은 색역을 보여 준다는 것은 색이 과장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어떤 디스플레이가 매우 넓은 색역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디스플레이를 이용해서 TV나 모니터를 만들 때에는 HDTV, UHDTV, sRGB, AdobeRGB 등의 각종 표준을 감안해서 색역을 넓혔다 줄여 주었다 해야 원래 의도했던 정확한 색을 볼 수 있게 된다.

 

국제표준, 국가표준, 산업표준, 지역표준

일단 표준 (標準, Standard)에도 종류가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ISO (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는 그 명칭 그대로 국제표준이다. 매우 많은 산업분야가 있기 때문에 ISO가 모든 것을 커버하지는 못하고 전문 분야별로 추가적인 국제표준들이 있는데 ISO와 협력하기도 하고,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IEC (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 국제전기기술위원회)가 있는데, 현재는 ISO의 전기전자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ISO/IEC는 각 국가별로 국가위원회 (National Committee)를 구성해서 (국제표준의 제정과 심사 등에) 참여하게 된다.



방송/영상 업계에서는 ITU, SMPTE, VESA, MPEG 등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이다. SMPTE는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의 약자인데, 1916년에 미국에 설립된 표준화 단체로 국제표준이나 국가표준이 아닌 산업표준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관련된 많은 표준을 만들고 있는 VESA (Video Electronics Standard Association) 역시 산업표준이다. 업계 리더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활발하고 효율적으로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산업표준을 거쳐 국제표준으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HDR의 시초이자 현재의 주역인 Dolby Vision이 처음 소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2014년이었다. 이 Dolby Vision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PQ (Perceptual Quantizer)는 Dolby Vision이 발표된 2014년에 곧바로 SMPTE ST-2084로 표준화가 되었고, 같은 해에 ST-2086에 PQ를 위한 정적 메타데이타 (Static Metadata)가 표준화되었으며, 이어 2016년에는 ST-2094에 보다 정확한 PQ 영상 재생을 위해 동작 메타데이타 (Dynamic Metadata)가 표준화되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에 국제방송연맹 (ITU)이 ITU-R BT.2100을 발표함으로써 PQ는 HDR 방송을 위한 2개의 변환함수 (Transfer Function)의 하나로서 국제적인 표준이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과 관련 영상 포맷이나 파라미터 등은 결국 국제연맹 (UN) 산하 기구인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를 통해 국제표준이 되고, 이 표준을 준수하는 영상들은 국제적인 방송 프로그램 교환 (Programme Exchange)을 위한 호환성을 갖게 된다. 우리가 방송 포맷이나 장비와 관련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 ITU 표준 명칭에 대해 간략히 설명 드리자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우선 ITU-R은 Radiocommunication, ITU-T는 Standardization, ITU-D는 Development의 약자이다. 그리고 Rec.은 Recommendation의 약자인데 말 그대로 ‘권고’라는 뜻이다. 물론 말만 권고안이지 국제표준이기 때문에 방송을 제대로 하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리고, BT.601, BT.709, BT.2020, BT.2100 등에서 BT는 Broadcast Service (Television)을 뜻하는 것이고, 뒤의 숫자는 문서의 일련번호이다.


참고로 같은 ITU 문서를 간략하게 부르거나 표기할 때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SDTV 표준은 ITU-R BT.601이라는 문서에 들어가 있는데, 어떤 이들은 “BT.601”이라고 부르거나 써 왔고, 어떤 이들은 “Rec.601”과 같이 부르거나 써 왔다. 혹은 이 표준이 정의하고 있는 것이 SDTV 방송 시스템이므로 그냥 “SDTV”라고 부르기도 한다. 궁전(宮殿)이나 궁궐(宮闕)이나 대궐(大闕)이나 다 같은 뜻인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ITU - 국제 방송 표준

아래의 표는 SDTV, HDTV, 그리고 UHDTV 표준의 주요 파라미터들을 비교해 주고 있다. 아날로그 컬러 텔레비전 방송은 크게 NTSC (북미, 일본, 한국 등)와 PAL (유럽, 중남미 등), SECAM (동유럽 등)의 3가지의 지역 표준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표준은 이를 국제적인 프로그램 교환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더 좋은 화질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SDTV (ITU-R BT.601)가 만들어진다. 이후 더 좋은 화질을 위해 HDTV (ITU-R BT.709)와 UHDTV (ITU-R BT.2020)이 만들어졌다. 특히 UHDTV로 와서는 단순히 해상도 뿐 아니라 120p의 프레임율 (Frame Rate)와 매우 넓은 색역 (Color Gamut)을 통해 화질의 혁신을 추구하였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과 비용효율적 측면에서 아직은 UHDTV를 제대로 서비스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다.

참고로 UHDTV 표준인 BT.2020에서는 R,G,B 3원색과 White Point (D65)를 정확하게 반영한 컴포넌트 코딩 파라미터들이 규정되었고, Constant Luminance라고 하는 새로운 컴포넌트 코딩도 추가가 되었다. Constant Luminance는 실제 별로 활용되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HDR을 위한 BT.2100에서 새롭게 추가된 ICtCp 컴포넌트 코딩은 돌비의 지원으로 좀 더 보편화가 빠를 것으로 보인다. Constant Luminance와 ICtCp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지면을 통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다.



아래의 표는 기존의 HDTV와 UHDTV, 그리고 HDR 표준 간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 지를 보여 주기 위해 정리한 것이다. 일단 HDR 표준인 BT. 2100은 기본적으로 BT. 2020의 파라미터들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단지 HDR의 효과는 UHD 해상도 뿐 아니라 HD 해상도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1920*1080의 HD 해상도를 포함시켰다. 색역 (Color Gamut)이나 기준 백색 (Reference White)는 BT. 2020과 동일한데, 단지 우리가 흔히 감마 (gamma)라고 불러온 EOTF/OETF가 PQ와 HLG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PQ는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돌비비전 (Dolby Vision)에서 유래한 것으로 SMPTE-2084에 산업표준이 되었고, 2016년에 ITU-R BT. 2100을 통해 국제표준이 된 것이다. HLG는 Hybrid Log-Gamma의 약자로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가 공동으로 개발한 HDR용 OETF이다. PQ가 12비트를 기반으로 0.0005 ~ 10,000nit의 엄청난 휘도 범위 (다이나믹 레이지)를 추구하는데 비해, HLG는 기본적으로 10비트 기반으로 0.001 ~ 1,000nit 정도의 휘도 범위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보다 실용적이라 하겠다.



참고로 유럽방송연맹 (EBU)에서는 방송용 모니터에 대한 자체 규격을 제정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왔다. 방송용 모니터는 일반 컴퓨터 모니터와는 다른 비디오 모니터인데, 방송을 위해 필요한 전문적인 인터페이스와 영상처리 기술, 그리고 다양한 부가 기능을 요구한다. 특히, 화질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화질 및 색 재현 정확도가 필요하다. EBU는 이러한 전문적인 모니터에 대한 품질 수준을 정의한 스펙을 담아 EBU Tech. 3320이라는 문서로 만들었다.


이 문서는 현재 버전 4.1R까지 나와 있는데, 이 가장 최신 버전에는 HDR과 관련된 요구사항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EBU Tech. 3320 (v.4.1)에는 모니터의 휘도, 명암비, 색역, EOTF의 오차범위, 색 재현의 정확도 등을 규정하고 있어 모니터를 구매하거나 활용하는데 있어서 뿐 아니라 개발이나 생산에 대해서도 좋은 기준을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로, ITU-R BT.2100에 정의된 HDR용 EOTF/OETF인 PQ와 HLG를 익숙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HDR을 위한 새로운 감마 커브’라고 말할 수 있다.


UHDTV나 HDR이 추구하는 BT. 2020의 매우 넓은 색역은 사실적인 영상을 재현하는데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문제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아직 이 정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LCD의 경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다른 화질적인 부작용 없이) 깊은 블랙과 높은 휘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mini-LED를 이용한 Local Dimming이라든지, 액정을 2장 겹친 Dual-Layer LCD라든지 하는 기술들이 시도되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비용과 수용 문제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이다. OLED의 경우 색역이나 명암대비 면에서는 매우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HDR이 요구하는 1,000nit 이상의 높은 휘도를 구현하기가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QLED가 등장해야 해결될 문제인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 아직 알 수 없다.


어쨌든 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색역이 넓다는 것은 무조건 추구해야 할 선 (善)이었다. 단지 SDTV나 HDTV와 같이 작은 색역을 기반으로 한 표준이 아직까지도 주류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패널 혼자서 색역이 넓다는 것은 오히려 색 보정이나 색역 조정과 같은 숙제를 안기는 부담을 준다. 하지만 UHDTV나 HDR 시대에는 넓은 색역은 필수이고, 현재의 디스플레이 패널들이 제공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넓은 BT. 2020의 색역을 요구받고 있다. 결코 마케팅이 아니라 화질 혁신을 이끄는 핵심 요소이며, 자연스러운 색감 혹은 실감나는 색감을 구현하기 위한 (눈으로 확인 가능한) 효과이다.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 참고: 2022년 DVNEST 뉴스레터에 기고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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