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디스플레이 – 나를 실망시킨 영화의 화질은 왜 그랬을까?

지난 12월 중순, 필자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미루어 두었던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이미 개봉한 지 좀 된 영화라서 그런지, 아니면 평일이라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인기가 없어서 그런지 영화관은 텅 비어 있었다. 필자를 포함해 딱 두 사람이 시청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미 수십 년 째 이어지고 있는 프레데터 시리즈의 최신판인 Predator Badlands였는데,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영화의 화질 때문이었다.


스토리나 연기, 연출 같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그렇다고 카메라 기법이나 구도 촬영기법 같은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화질이 안 좋았다고 한 이유는 어두운 장면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영상이 전체적으로는 어두우면서 블랙이 떠 버리는 바람에 어떤 장면에서는 피사체를 제대로 구분하기 조차 힘들었다.


실망스러운 영상의 원인은?

일단 영화 시작 전에 보여주는 다른 영화들의 트레일러를 볼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아래의 사진과 같이 AVATAR 트레일러 영상은 극장에서 보기에 적절하게 밝고 선명함이 부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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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 영화가 시작되자 이어지는 어두운 장면에서 들뜬 블랙과 낮은 휘도, 그리고 아마도 잘못 적용된 EOTF (감마)로 인해 피사체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보기가 불편했다. “어라, 이게 뭐지? 영상이 왜 이 모양이지?”하는 혼자말이 상영시간 내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 장면에서부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촬영을 시작했겠는가? 특히 자막이 나오는 장면에서 더 불편했다. 이유는 영상은 어두운데 자막은 매우 밝게 (아마도 100% 백색) 처리를 하는 바람에 자막이 나오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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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영사기실을 쳐다 보았다. 도대체 어떤 프로젝터이길래 영상이 이렇게 개판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뒤에 다시 나오는데 검색해 보면 LASER 프로젝터라고 나오지만 전문가 의견으로는 DLP 프로젝터 같다고 한다. 그런데 그간의 경험으로 DLP 프로젝터라 하더라도 이렇게 영상이 망가져 보이는 경우는 극장에서 처음 봤기 때문에 매우 황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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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항의하다!

일단 상영관 프로젝터가 어떤 종류인지 궁금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AI 답변으로는 롯데시네마 상영관에는 모두 LASER 프로젝터가 들어가 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상영관 나오면서 찍었던 위의 사진을 Facebook에 올렸더니 어떤 전문가 보기에는 DLP 프로젝터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프로젝터의 기술이 어떤 종류가 되었건 내 눈에 보이는 건 어둡고 블랙이 뜨며, 명암대비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롯데시네마 질문 게시판에 이러한 불만스러운 화질에 대한 의견을 올리고 프로젝터의 화질을 점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며칠 후 롯데시네마에서 답변이 달렸는데, 요약하자면 해당 상영관을 점검한 결과 프로젝터가 다소 어둡게 설정되어 있어 더 밝게 개선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다시 질문을 올려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며칠 후 다시 상영관을 찾았을 때는 필자 혼자서 그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로젝터를 더 밝고 선명하게 개선했다고 하니 두 눈 크게 뜨고 장면 장면을 살폈다. 며칠 전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들뜬 블랙으로 인해 명암비 낮고 선명하지 않은 영상)는 해결되지 않았다. 밝은 장면, 혹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아쉽지만) 그나마 피사체와 배경의 구분이라도 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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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래와 같이 어두운 장소나 밤 장면에서는 배경과 피사체, 혹은 피사체와 피사체간의 구분도 잘 안될 정도로 화질이 좋지 않다. 게다가 영화 시청에 더 큰 불편을 준 것은 자막이었다. 영어로 할 때와 외계어로 할 때의 자막 색깔이 각각 노란색과 흰색으로 달랐는데, 흰색 자막이 나올 때 너무 밝아 어둡고 명암대비가 낮은 영상과 너무 대비되어 눈부심을 유발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영상은 HDR이거나 HDR과 유사하게 다이나믹 레인지 (Dynamic Range)가 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글 자막은 일반 SDR과 같이 그냥 흰색 (예: RGB 100%)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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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프로젝터의 설정을 개선했다고는 하나 영상의 화질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프로젝터 + 스크린의 문제가 아닌 영상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동안 이곳 롯데시네마에서 많은 영화를 보았는데 스크린의 블랙은 항상 조금 떠 있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HDR을 상영할 수 있는 프로젝터+스크린이 아니라 SDR급 영상을 볼 수 있는 상영관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영상을 튼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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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여 드린 프레데터 상영 전 보여 준 아바타의 트레일러는 동일한 프로젝터와 스크린에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다. 즉, 블랙이 좀 뜨는 이 상영관 환경에서 밝기나 명암비가 너무 낮게 보인다거나 암부계조들이 뭉쳐서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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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이 문제였나?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배포된 영화의 상영용 파일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를 다 만들고 나면 다양한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포맷으로 마스터링을 해서 배포한다. 예를 들어, 해상도와 프레임레이트를 다양하게 배포한다. 상영관의 특성에 따라 2K가 필요한 곳도 있고, 4K가 필요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iMax와 같은 초대형 스크린을 위한 해상도 포맷도 있다. Frame Rate의 경우에도 24p나 48p로 나누는 경우도 있고, TV용으로 50p나 60p로 변환해 줄 수도 있다. 요즘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통해 영화를 많이 보기 때문에 TV용 해상도와 프레임레이트 버전을 따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SDR과 HDR 버전도 따로 만들어서 배포하는데 HDR의 경우 PQ 1000nit, PQ 2000nit 등 최대 휘도를 달리해서 마스터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Youtube에 올려진 이 영화의 트레일러 (홍보영상)을 컴퓨터에서 (LCD 모니터로) 시청해 보면 극장 상영관보다는 나았지만 역시나 전반적으로 어둡고 암부 계조의 구분이 어려웠다. 아래의 이미지들은 Youtube 에 올려진 트레일러 영상을 내려받은 후 팟플레이로 재생하면서 캡쳐한 장면들이다. 캡쳐한 것이므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위의 사진들에 비해 영상의 원본 상태에 좀더 근접하게 보여 줄 수 있다. LCD 모니터로 보기에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명암대비가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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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 TV로 트레일러를 봤더니…

그래서 이번에는 동일한 트레일러 영상을 집에 있는 OLED TV로 보았다. 어둡지 않고, 명암대비가 정상적이고, 색깔도 선명했다. 아, 이런 젠장~! 이 영화를 편집/색보정한 친구는 OELD 혹은 HDR을 지원하는 프리시전 모니터로 보면서 작업을 한 후에 LCD TV나 모니터, 그리고 기타 SDR급 다이나믹 레인지를 가진 디스플레이 (프로젝터)에 대한 보정을 한 버전은 배포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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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ED TV로 본 프레데터 트레일러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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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ED TV로 본 프레데터 트레일러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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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ED TV로 본 프레데터 트레일러 (Youtube)


OLED는 일단 LCD에 비해 색 재현율이 높다. 색 재현율이 높다는 것은 색 재현 범위가 크다고도 얘기하는데, 더 많은 컬러를 보여 줄 수 있다는 뜻도 되지만, 동일한 컬러 코드를 주었을 때 LCD에 비해 더 높은 채도 (Saturation)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RGB 8bit 체계에서 RED (255, 0, 0), Green (0,255,0), Blue (0,0,255)와 같은 코드를 주었을 때 OLED는 일반적인 LCD보다 더 높은 채도를 보여 준다. 한 마디로 더 진한 컬러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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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OLED가 일반적인 LCD보다 더 밝지 않음 (=휘도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 진하고 선명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래의 그림에서와 같이 낮은 계조에서 LCD는 채도가 줄어드는데 비해 OLED는 채도가 별로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LCD는 어두운 색이 될수록 채도가 낮아져 물 빠진 색처럼 느껴지지만, OLED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두운 장면이 많은 영상에서 특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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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ED vs LCD – Color Linearity 비교 (출처: SONY)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OLED는 블랙의 휘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LCD는 백라이트의 빛을 LCD를 차단하거나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빛의 투과량을 조절하는데 이런 구조이다 보니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인 LCD는 블랙의 휘도가 0.1 ~ 0.5nit 수준이다. 하지만, OLED는 자발광 디스플레이이기 때문에 블랙을 구현할 때에는 단순히 OLED 소자에 전기를 끊어 (물론 기술적으로 완전히 끊지는 않지만) 발광하지 않도록 하면 되기 때문에 Black의 구현에 훨씬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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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ED vs LCD 구조 비교 (출처: EIZO)


이러한 차이로 인해 전체적인 명암대비와 선명도는 OLED가 일반적인 LCD를 2배 이상 능가한다. 즉, 더 넓은 색재현범위 (높은 채도), 낮은 계조에서의 채도 유지, 그리고 깊은 블랙으로 인한 강한 명암대비와 선명도 향상이 OLED가 일반적인 LCD보다 더 좋은 화질을 보여주는데 기여하는 부분이다.


너만 좋은 모니터로 보면 다냐?

결국 필자가 내린 결론은 OLED나 LASER 프로젝터가 아닌 디스플레이로 시청하게 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요즘 많은 영상들이 HDR로 제작되는데, HDR의 경우라도 매우 다양한 Dynamic Range를 가진 디스플레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PQ의 경우 EETF라는 과정을 거쳐 디스플레이의 특성에 최적화된 HDR을 보여 주도록 되어 있다. 즉, 모든 사람이 1000nit 이상의 최고 휘도와 0.001nit의 블랙 휘도를 구현하는 디스플레이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디스플레이의 특성에 맞도록 컨텐츠의 Dynamic Range를 조정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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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HDR이라고 해서 무조건 밝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흔히들 착각하는 게 1000nit HDR이라면 백색의 휘도가 1000nit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1000nit는 Peak Luminance 즉 최대 휘도로 백색이 아니라 매우 밝게 빛나는 물체 (헤드라이트, 반사체 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Reference White (혹은 Diffuse White)는 실내냐 실외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 150 ~ 400nit 정도가 된다. 따라서 HDR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이 프레데터 영상에 일반 SDR 개념으로 자막을 100% 백색을 쳐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눈이 부셔 볼 수가 없다. 흰색 자막은 50~60% 레벨로 넣어 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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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생각으로는 프레데터 영화를 배포함에 있어서 HDR 버전의 영상을 SDR 변환없이 그대로 배포했고, 여기에 SDR 방식으로 자막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니면 SDR로 만들기는 했지만 감독/편집자/컬러리스트가 OLED와 LASER로만 모니터링 하면서 영상을 다듬었고, 여기에 한국에서 일반 SDR 영상과 같은 식으로 자막을 넣은 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두 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컨텐츠의 경우 LCD로 보다 OLED로 보는 것 만으로도 SDR에서 HDR로 업그레이드가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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