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BIRTV 전시회 스케치

2024 BIRTV 전시회 스케치


2024-08-28

모니터포유㈜ 신수근

비디오아트 2024년 9월호에 투고한 기사입니다. 


9년만의 북경 방문이었다. 처음에는 한 5~6년 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옛 기록을 뒤져 보니 마지막으로 북경 왔던 것이, 그리고 BIRTV 전시회를 참관한 것이 지난 2015년이었다. 역시 코로나로 인해 약 3년의 잃어버린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서울 날씨가 여전히 뜨겁고 습했던 것에 비해 위도가 약 2도 정도 높은 북경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좀 더 쾌적한 편이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습기가 덜 해 그늘에만 있으면 한결 편안했고, 다행이 공기 질도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는 하도 공기 질이 나빠 전승절 행사를 할 때면 북경 주변의 굴뚝있는 공장들을 모두 강제로 쉬게 했다는 말도 들었었는데, 요즘에는 많은 공장들이 더 멀리 북경 외곽으로 이전했고, 전기차도 많이 도입되어 공기 질이 많이 좋아진 듯 하다. 특히 저녁에는 25도 정도로 선선해져서 호텔 인근 쇼핑몰에는 인파로 넘쳐났다. 

산리툰 (Sanlitun) 지역의 쇼핑가


필자는 전시회 2일차인 8월 22일부터 3일간 참관을 하였는데, 관련 업체와의 회의 중간중간에 조금씩 살펴 본 것이라 전시회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산업의 추세 같은 것을 알려 드리지는 못한다. 단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그리고 가장 큰 시장 중 하나가 된 중국의 내수시장은 어떤지 대략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주요 참관업체 중심으로 사진을 올려 드린다. 



먼저 BIRTV 전시회는 총 10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필자는 1관에서 8관까지만 보았고, 9관과 10관은 가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필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홍보성 부스들이었기 때문이다. 


[1관, 2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메인 건물이 Hall 1과 Hall 2가 있는 곳이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카메라, 조명, 삼각대, 리그 등 주로 촬영장비와 제작장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이 큰 내수시장과 OEM 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실감나게 한다. 특히 LED의 경우 중국이 세계 시장을 제패할 정도로 막강한데 최근 LED Wall을 활용한 XR 촬영이 각광을 받으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것 같다.

 

 

  

 

 

 

 





한국과 좀 다른 면이라면 중국의 경우 온라인 실시간 쇼핑이나 실시간 중계가 많이 발전하다 보니 세로 방송을 위한 장비들이 더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흥미로웠던 것은 극장에 필요한 팝콘 기계부터 의자까지 영화 산업에 관련된 것들이 전부 전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쉬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좋은 서비스가 된 것 같다. 


 

   

 






[3관, 4관, 5관, 6관]

Sony, Panasonic, Nikon, ViZRT, BlackMagic Design, Sumavision, Huawei 등의 대형 업체들과 대형 중국 현지 업체들이 3관 ~ 6관에 자리잡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블랙매직이 가장 큰 부스와 가장 많은 옥외 광고를 한다. 지난 10여 년간 엄청나게 발전했을 뿐 아니라 그만큼 유명해졌고 이제는 방송장비 시장에서 기술적으로, 그리고 규모적으로 가장 주도적인 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 



 필자가 아무래도 디스플레이 산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전시회를 가면 항상 방송용 모니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10여 년 전부터 보던 업체들이 대부분 잘 성장하여 큰 부스를 차리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촬영용 소형 모니터와 스튜디오용 모니터로 나뉘어 정리가 좀 되고 있는 듯하다. 중국 역시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방송장비 업체들도 대부분 고전하고 있고, 정부의 지출이 줄다 보니 더욱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삼성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 방송장비 브랜드였던 TVLogic은 이제 중국 시장에서 볼수 없게 되었다. OEM으로 생산기술을 연마한 중국 업체들은 CalMan이나 LightSpace와 같은 색보정 (Calibration) 업체들과 손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세계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 Sony를 제외한 일본 업체들도 대부분 방송용 모니터 시장에서 사라졌고, 그 빈 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하나씩 채우고 있다. Konvision은 스튜디오 모니터 시장에서 강세인데 이번에 ProRes 레코더 겸 모니터를 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ZhunZheng은 중국 내에서만 판매하고 해외에는 미국의 FSI라는 작은 업체가 자체 브랜드로 OEM을 받아 글로벌 판매를 하고 있다. 9년 전에도 꽤 큰 부스를 차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에는 엄청 넓은 공간을 마련했다. 모니터 그 자체 보다는 세미나와 영화 산업에서의 활약을 보여 주는데 중점을 둔 듯하다. 

 


이 밖에 Ruige도 하이급 4K HDR 모니터를 선보였고, 3개의 세로 화면이 장착된 모니터로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그만큼 세로 방송이 중국에서는 인기인 듯하다. 

 

몇 년 전 세계 최초로 NDI 모니터를 선보였던 SWIT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큰 부스를 준비하여 모니터 뿐아니라 배터리아 무선 송수신 시스템, 조명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다. 



Green Screen과 LED Wall, 로봇 카메라, 그리고 움직이는 무대 등 최신 기술을 모두 동원하여 XR 촬영 시현을 하던 이 부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정말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멋진 액션 촬영 현장을 선보였다. 

 

  




 

   





잘 모르는 중국 현지 업체들도 많았다. 이런 업체들도 있었다고, 사진만 참고하시기 바란다.

   

 




[7관, 8관] 

8관에는 DJI 및 Grass Valley, AJA, EVS, Riedel, Libec, Sony, Canon, FujiFilm 등의 유명 해외 브랜드들이 주로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Sony 부스가 커서 놀랬다. NAB나 IBC의 웅장한 부스 그대로였다. 어떤 부스들이 있었는지 간단히 사진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불평불만] 

마지막으로 이 전시회의 불만스러운 점부터 말하자면 한 마디로 전시회장과 주최측의 성의나 배려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국내 전시회라고 하지만 외국인들도 많이 보러 오는데 (아니 와야 하는데) 홈페이지의 영어 버전은 한 단계만 더 들어가면 중국어가 튀어 나온다. 참으로 난감하다. 


게다가 전시회 참관 예약은 1일만 허용된다. 다음날 다시 들어가려면 다시 뜨거운 태양아래 천정도 없는 야외 매표소에 줄 서서 기다렸다가 새로운 QR이 찍힌 스티커를 받아야 한다. 이 무슨 똥개훈련이란 말인가? 수없이 많은 전시회를 다녀 봤지만 지붕도 없는 야외 매표소에 줄 서게 하고, 그것도 매일 다시 줄 서게 만드는 곳은 여기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매일 방문증 뒷면에 QR코드를 새로 붙여준다. 도대체 왜?


아래의 사진에서 지붕으로 보이는 부분은 진짜 지붕이 아니다. 위쪽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비 맞고, 눈이 오면 눈 맞고, 뜨거운 태양을 피할 길이 없다. 마지막 날에는 아예 창구도 하나만 열고 있어서 줄 서 있던 사람들은 아침부터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거의 없던 노인 2명은 뜨거운 태양에 노출되어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QR 스티커를 새로 받고 나면 공항 보안 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하면서 짐을 검사 받는다. 테러를 막기 위해 전철에서도 하는 것이니 이 정도는 애교!

 


휴식 공간이나 식사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전시장 내부에 식당이 없어 도시락 업자들이 파는 걸 사 먹거나, 외부에서 도시락을 주문하여 직원들이 전시장 입구에서 받아 들고 들어 오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런데 이마저도 마땅히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기 저기 바닥에 앉아서 먹거나 몇 개 놓여 있는 계단 옆 테이블에 여러 사람 달라 붙어 먹는 모습을 보게 된다. 3, 4, 5, 6 홀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는데 2층에 많은 공간이 있음에도 활용하지 못하는 (아니 안 하는) 것을 보면 상품과 기술의 발전을 따라 오지 못하는 행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놀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라도 놔 주지!


시원한 커피를 살 수 있는 곳은 야외의 스타벅스 트럭 하나뿐이었는데 디지털 과잉으로 인한 왕짜증이 폭발한다. 그냥 주문하고 현금이나 카드로 계산하면 간단한 것을 굳이 스타벅스 앱을 깔아서 그걸로 주문하고 결제해야 한다고 한다. 앱을 깔고 나서도 원하는 커피를 찾기가 어렵다. 깔고 나니 중국어가 튀어 나와서. 나 같이 나이 든 외국인 뿐 아니라 옆에 있던 젊은 중국인들도 힘들어 하다 아예 점원엑 휴대폰을 넘겨 준다. 앱 깔며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어쩔 수 없다. 같이 간 일행이 죽어도 아이스 라떼를 마셔야 한다니. 그런데 마셔 보니 우유가 달라 맛이 없단다. ㅎㅎ



편의점도 야외에 작은 것 딱 하나다. 전시장 내부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야외에 작은 편의점 하나만 있다는 것은 의외다. 아마도 중국인들이 커피나 찬 음료보다는 차와 따뜻한 음료를 선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인데 말이다. 

 


첫 날 오후 5시경에 (전시하지 않는) 업체 사람과 만나 겨우 앉을 곳을 찾아 얘기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큰 고함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홀 앞에서 경비원들이 사람들 빨리 나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빨리 문 닫고 가야 한다고. 작게는 수백 만원, 크게는 수억씩 돈 들여 전시하는 사람들에게 경비들이 저렇게 죄인 취급하듯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뱀다리 (사족) – 디지털 과잉의 시대!

장면 1) 토요일 전시회를 마치고 만리장성 저녁 투어에 나섰는데 (한국 시간으로) 시계를 잘못 보는 바람에 출발지에 1시간 일찍 왔다. 어디 시원한 커피라도 마실 곳이 없는가 싶어 근처 건물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 하며 물었더니, 물이 마시고 싶다는 것으로 오해를 했는지 생수를 한 병 꺼내 준다. 그런데 20위안 (약 4천원) 밖에 안 하는 이것도 QR코드로 사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Alipay도 잘 안되고, WeChat Pay도 잘 안 된다. 쩔쩔매고 있으니 옆에 사람들과 얘기 하고 있던 젊은 남자 한 분이 자기가 대신 결제해 주며 그냥 마시라고 한다. 시골도 아니고 대도시 북경에서 양복 입은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흔쾌히 생수를 사 주다니.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고마웠다. 커피 마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정을 듬뿍 느끼는 순간이었다. 

장면 2) 인천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분이 한국말로 이 버스 타는 표 사는 걸 도와 달라고 한다. 한국말을 좀 하는 30대 정도의 남자인데 한글로 된 자동 표 판매기 사용은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우리도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 지는 알았지만 막상 자판기에서는 목적지 (정류장 이름)을 입력하라고 하니 찾는데 시간 좀 걸렸다. 이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어를 알아도 어려운 것이었다. 앞서 잘못 산 표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취소하러 같이 가자고 했지만 (수업료로 생각하겠다며) 굳이 환불하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9,000원이면 곰탕이 한 그릇인데.

장면 3) 이제 공항버스가 떠날 때가 다 되었는데 이번에는 한 일본 여자분이 결제를 하지 못해 난감해 하는 것이었다. 맨 앞 자리에 앉은 덕분에 이번에도 또 도우미로 나서게 되었다. 고작 두 정거장 떨어진 호텔로 이동하는 것인데 공항 안내 데스크에서 이 버스를 타면 된다고, 버스에서 카드로 결제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버스는 교통카드 내장된 신용카드만 쓸 수 있다. 이 여자분이 현금은 5만원 권만 가지고 있어 잔돈을 거슬러 줄 수도 없으니 난처했다. 나도 5만원짜리 밖에 없어 어떻게 하나 하고 서로 걱정하고 있는데 결국 버스 기사님이 결단을 내렸다. 그냥 요금 안받고 태워 준 것이다. 꼴랑 2 정류장 가는데 택시 보다 비싼 9천원짜리 시외 버스를 타라고 한 안내 데스크를 원망하며. 

디지털 시대. 많은 것을 소위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수 있다. 편리하다. 그런데 그게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는 큰 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컷 경험한 출장이었다. 다른 대안 없이 한 가지 선택만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스마트한 방법이 아니다. 항상 2번째 대안, 3번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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